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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한 마음으로 사랑하는 것에 대하여(2013)

최종 수정일: 2022년 9월 12일

천리포 수목원에 처음 갔을 때의 인상을 나는 아직도 잊을 수 가 없다. 정원사가 되는 것이 꿈인 어린아이였던 나는 그 곳이 분명 여타의 곳들과는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다. 때는 봄이었고 키가 큰 해송 숲을 걸어서 나가자 마법처럼 펼쳐진 건 고요한 호수와 호숫가에 핀 노랗고 하얀 수선화들이었다. 호수를 따라난 길은 잔디도 포장된 길도 아닌 우리나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작은 풀들이 자라난 ‘자연다운’ 길이었다. 당시만 해도 수목원에는 회원들만 입장할 수 있었던 터라 함께 들어온 일행들을 제외하고는 수목원 안에 사람이 없어 매우 조용하였고 나무들과 꽃들은 아름답다 못해 행복해 보였다. 인위적인 느낌이 지배적인 다른 수목원들과는 달리 이곳은 자연다운 분위기가 흘렀고 그곳의 생명들은 분명 사랑 받고 있다는 것을 어린 나이에도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시간이 흘러 나는 입시의 거대한 흐름에 휩쓸릴 나이가 되어버렸다. 성공을 위해 남들의 기대를 맞추기 위한 공부를 하느라 천리포 수목원은 조금씩 잊혀졌고 고등학생이 되자 나의 꿈은 어느새 정원사에서 의사로 변해 있었다. 그런데 불행인지 다행인지, 나의 수능시험 성적은 지금까지 치른 시험들 중 최악의 성적을 냈고 다행히 미리 써둔 수시 전형으로 조경학과에 입학할 수 있었고 그런 나에게 어릴 적 일들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어린 시절 가졌던 정원사라는 꿈과 잊혀졌던 나의 마음과 함께 떠오른 것은 먼지에 덮인 채 기억 속 한 켠에 자리잡고 있던 천리포 수목원이었다. 그리고 그 해 여름 방학, 조경이라는 조금 더 구체화된 꿈을 가지게 된 나는 천리포 수목원을 다시 찾아가게 되었다. 어릴 적 마지막 발걸음 이후로 10년도 더 지난 뒤의 방문에 설레는 마음으로 태안으로 가는 첫 차에 올랐다. 오래된, 그러나 세상의 바람에 잊고 지내던 고향의 친구를 만나는 그런 두근거림을 가지고.

2시간이 조금 넘는 여정 끝에 천리포 수목원에 도착할 수 있었다. 수목원에 들어서는 사람들을 맞이하는 해송 숲은 여전히 그대로였지만 약간의 변화들도 눈에 띄었다. 민병갈 선생님께서 돌아가시고 호수를 따라 난 길은 흙 길로 변해 있었고 사무소를 고쳐 만든 카페와 기념품가게, 그리고 박물관이 들어서 있었다. 아마도 회원만 입장할 수 있었던 종래의 규정이 바뀌어 일반인도 출입이 가능해진 뒤로 찾아오는 사람들이 늘어난 탓일 것이다. 그러나 아쉬움이 채 내 마음에 들기도 전에 나는 곧 오래된 그 느낌을 다시 느낄 수 있었다. 그때는 여름이라 호숫가에는 수줍은 수선화 대신 원숙한 수국들이 만발해 있었다. 호숫가를 따라 한창때의 낙우송과 버드나무들은 햇빛을 받아 녹음을 뽐내고 있었으며 목련은 봄의 기억을 품은 채 여름의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연잎은 호수를 차분히 잠재우고 있었으며 거대한 침엽수들은 그곳을 위요하며 세상의 많은 일들로부터 지켜주는 듯하였다. 사람들의 발길이 늘어나 조금은 소란스러워지고 여러 변화도 느껴지는 천리포 수목원이었지만 이 오래된 나의 친구는 순수한 마음만은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호숫가를 지나면 곧 겨울정원, 동백원, 호랑가시나무원 등 수목원의 작은 공간들을 하나 둘 만날 수 있다. 그곳에는 전정되지 않은 나무들이 길을 약간 가리고 있었다. 혹자는 불편하니 전정을 해야 한다고 말하겠지만 이곳은 그렇지 않다. 조금은 불편하더라도 나무들이 제 모습대로 자라나게 하는 것이 이곳의 법칙이다. 나무들은 그저 자신 안에 내재된 운명을 따라 살아가기만 하면 된다. 비단 나무만이 아니다. 곧 나는 한 무리의 나비들을 발견할 수 있었는데 그들은 내가 다가와도 약간의 두려움도 없이 꿀을 빨며 이쪽저쪽으로 날아다녔다. 인간에 대한 경계심은 찾아볼 수 없었으며 그곳에서 나는 충분히 자연의 일부가 될 수 있었다. 오래 전에 자연의 품에서 벗어난 인간들은 이곳에서 그 흐름에 포함된다는 것이 무엇인지 기억할 수 있게 되리라. 마취목원과 우드랜드를 지나, 동백원과 왜성침엽수원을 지나 수목원을 모두 둘러보고 출구 쪽으로 가니 기적처럼 펼쳐진 것은 힘차게 파도치는 태안의 바다와 그곳에 버티고 서있는 낭새섬이었다. 갑작스럽게 펼쳐진 장엄한 경관에 나는 놀라 몇 분이고 앉아 바라보며 그림을 그리지 않을 수 없었다.

수목원을 둘러보며 이런 생각을 했다. 과연 민병갈 선생님께서 어떤 목적을 가지고 수목원을 건립하셨다면 지금의 천리포 수목원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수목원이라는 칭호를 가지게 될 수 있었을까. 천리포 수목원은 미국에서 태어나 한국인으로 귀화한 민병갈 선생님(Carl Ferris Miller)께서 설립하신 수목원이다. 군인으로 처음 한국을 방문해 한국의 자연에 매료된 그는 태안 해안가의 땅을 매입하여 수목원을 만들기 시작하였다. 결혼도 하지 않고 자식도 남기지 않고 죽기 전까지 돌본 이 수목원에는 그의 자연에 대한 마음이 모두 담겨있다. 심지어 숲길을 가다가도 거미줄이 나무 사이에 쳐져 있다면 돌아서 가기도 했다는 그는 진정으로 자연을 사랑하고 아끼는 사람이었다. 수목원의 나비들이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않던 것도 그의 마음이 수목원에 담겨있기 때문일 것이리. 그는 어떠한 욕심이나 목적성 없이 매 순간 자신이 가장 빛날 수 있었던 일을 하였으며 그 일을 순수하게 사랑하였다. 그래서 그는 바쁜 와중에도 언제나 행복하였고 자신이 하는 일에 그의 온 마음을 담을 수 있었다. 우리는 종종 성공에 집착하곤 한다. 그런 과정에서 처음 가졌던 아름다운 마음은 잊혀지고 욕망이 그 자리를 채워 실망하고 좌절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성공이 아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얼마나 순간을 빛내고 있는가 하는 것이며 자신이 지금, 무언가를 순수하게 사랑하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민병갈 선생님께서는 그것을 몸소 실천하셨기 때문에 아름답다는 말로는 부족한, 우리들이 오래 전에 잃어버린 것들을 담은, 영혼을 지닌 수목원을 탄생시킬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한 가수의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가난하지만 음악을 순수하게 사랑한 그는 매우 올곧은 사람이었다. 오로지 자신이 땀 흘려 노동해 번 돈으로 끼니를 때우는 그는 노동이란 가장 성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하여 일을 할 때는 반드시 깨끗한 수트를 입고 하였다고 한다. 몇 번 기획사 담당자의 눈에 띄어 음반을 낸 적도 있었지만 미국에서는 단 6장 만 팔리는, 남들이 보기에는 최고의 참패를 이룩하였다. 그러나 그의 음악은 지구의 반대편, 억압되고 차별이 심했던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젊은 영혼들에게 희망을 가져다주는 국민적인 노래가 되었으며 수백만 장의 앨범이 팔려나갔다. 그러나 그는 그러한 사실을 30년이 지나도록 모르고 있었으며 남아공에서 콘서트를 가진 뒤 세계 매체의 조명을 받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그는 모든 이목을 뿌리치고 다시 그의 고향 디트로이트로 돌아와 평소와 다름없는 삶을 보낸다. 그의 이름은 ‘시스토 로드리게즈’로 지금도 여전히 숭고한 삶을 이어나가고 있다고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가 남아프리카에서 대성공을 이룩했다는 것이 아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가 그의 삶과 음악을 순수하게 사랑하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의 생각이 옳다는 것을 알고 실천하였다는 것이다.

로드리게즈나 민병갈 선생님과 같은 삶을 산다고 해서 반드시 세상이 말하는 ‘성공’이 찾아오는 것은 아니다. 성공을 바라는 순간 이미 우리 마음에 욕망의 싹이 움트는 것이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세상의 기준에 맞는 성공이 아니라 정신적인 노예의 상태에서 벗어나 느끼는 마음의 여유와 영혼의 풍요로움이 되어야 할 것이다. 간혹 나에게도 어떤 욕망이 불쑥불쑥 찾아온다. 세계 최고의 설계자가 될 것이라든지 학과에서 성적으로 최고의 자리에 오르고 싶다는 것이라든지 하는 것 말이다. 그러나 이제는 안다. 중요한 것은 매 순간 존재의 의미를 느끼며 내가 사랑하는 일을 하는 것이라는 걸 말이다.

작년 여름의 방문 뒤로는 잊지 않고 이곳에 자주 방문하고 있다. 겨울에는 크로커스와 스노우드롭의 인내와 용기를 볼 수 있었고 풍년화의 노란 꽃과 납매의 부드러운 향기가 수목원에 생기를 불어넣고 있었다. 이번 봄에도 역시 수선화가 호수를 부드럽게 껴안고 있었으며 민병갈 선생님께서 사랑하신 다양한 품종의 목련들이 차례차례 필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와 함께 노란 개나리와 수줍게 핀 마취목이 수목원을 장식하였다. 이번 여름에도 탐스러운 수국과 갖가지 연꽃들이 피어나겠지. 살아가면서 욕망이 나의 마음에 피어날 날이 또 찾아올 것이다. 그런 때마다 나는 천리포 수목원을 기억할 것이다. 그곳의 분위기와 그곳에 담긴 민병갈 선생님의 마음과 함께.

다시 떠날 채비를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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